Book Review

[독서감상문 28] 하늘을 날고 싶다면? < 지병림 '서른 살 승무원'>

남내점주임 2023. 5. 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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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받으며, 나중에 그 도움을 돌려 갚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서른 살 승무원'이란 책은 예전부터 서점에 들리면 보고 싶었던 책이였고, 내가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글들에서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욱 보고 싶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글쓴이이자 주인공은 지병림씨의 과거이자, 모든 예비승무원들의 현재 모습일 수도 있다. 글의 처음문단부터 마지막문단에 이르기까지 지병림씨는 '피그말리온'이라는 다섯 글자를 강조한다.

 

피그말리온? 많이 들어보기는 했는데 실질적으로 많이 쓰지 않았던 단어라서 생소하다. 뜻을 검색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 기대하거나 예측하는 바가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를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 예측한 바가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예측한대로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피그말리온의 효과는 강력하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거대한 기가 자신에게 들어와서 계속 무엇인가를 실행하게 함으로써 목표에 근접하게 되는 강력한 에너지이다. 조금 더 피그말리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피그말리온의 전설

 

나는 슈케이스와 트롤리에 짐을 꾸려 세계 여러 나라를 드나든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고, 늘 새로운 풍경을 접하며 보고 듣고 말하고 배운다. 그러나 다국적 외국 크루들과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소통하고 우정 어린 동료의식을 키워 마침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되는 비행생활을 즐기기까지, 중동에서 승무원으로 살아남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함박미소를 머금고 기내식만 제대로 대접하면 된다는 무식한 발상은 7주간의 고된 훈련 가운데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벽을 뛰어넘는 일도 순전히 내 몫이었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동양 문화에 기인한 다소곳한 말씨와 행동은 자칫 자기표현이 어눌한데다 어린애처럼 수줍음이나 타기 좋아하는 프로답지 못한 인상을 남기기 쉬웠다.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영어로 표현하고 늘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일 때에야 그들은 온전한 인격체로 동양여성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외항사 승무원 생활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어디에서고 스스로 나를 대변하고 보호하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는 학력위조가 판을 치는 현상으로도 알 수 있듯이 당사자 고유의 실력이나 됨됨이보다는 배경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지나칠 정도로 심하다. 그러나 외국인들과 함께 일할 때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실력이 우선이다. 맡은 업무를 얼마나 잘 해내는지만 판면되면 출신학교가 어디며, 돈을 좀 있는 집 자식인지, 결혼은 했는지, 했다면 남편은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지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질 못한다. 그래서 달랑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도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열정만 인정받으면 중역의 자리까지 보란 듯이 꿰어 찰 수 있다. 이런 분위기 하나 만으로도 나는 새로운 세계에 놓인 기분이었다. 고학력이 대세를 이루는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 졸업장을 가지고도 원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 자기비하를 한 나머지 결국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우리 한국의 상황이다. 이런 답답한 현실의 한가운데 국가적 차원에서 젊은 한국의 인재에게 해외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배려하는 제도를 마련한 것은 너무나도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대학졸업 후에 대학총장 비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직장생활은 말하자면 온실 속의 화초와도 같이 매우 안락하고 순탄했다. 함께 근무하는 교직원들은 모두가 점잖고, 근무한경이 교육의 장이다 보니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배울 것들이 많았다. 당시 모시고 있던 총장님도 나에게 신임을 두시는 눈치라 여러모로 자신감을 갖고 비서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까지 사랑받는 비서로 내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의 항로는 과연 여기가 종착점인가? 이런 식으로 10년 후에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보다 확실한 커리어를 구축해보려는 심산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분야에 필요한 자격증을 모두 이수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았고, 어쩌다 자리가 마음에 든다 싶으면 내 사회적 나이와 경력에 비추어 충분한 보수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엇에 쫓기듯 맞선을 보고 결혼이나 해서 평범하게 인생을 방치하자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승무원이란 직업을 선망했던 것은 대학 졸업반 때였다. 그 당시 국내항공사에 지원에 최종 임원면접까지 가는 행운을 얻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때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 일찌감치 단념을 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못다 이룬 첫사랑과의 인연을 되찾는 심정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어 들게 되었다. 그래서 2006년 1월에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승무원 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행운의 여신은 고맙게도 나를 잊지 않았는지 다소 늦게 승무원 면접 준비를 시작한 나에게 중동에서 손꼽히는 두 개의 항공사 모두에 최종면접까지 이르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양 항공사 모두 낙방이었고, 설상가상으로 6개월이란 패널티까지 받아 나는 한 계절을 시름과 좌절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적절한 때가 예비 되어 있는 법인지 나의 행운은 늦가을이 되어 다시 찾아왔다. 씁쓸한 마음으로 해외취업의 꿈을 포기하려 할 대 산업인력공단에서 국비연수생을 선발해 해외취업에 우선권을 준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면접의 감을 잃고 나태해진 나는 뒤늦게 찾아든 이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용케 선발된다 해도 주 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아르바이트와 스터디를 병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부담스러웠다. 그 만큼 공단에서 지원하는 교육프로그램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였다. 기나긴 고심 끝에 나는 마지막 전력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일단 연수생 선발면접에 도전했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야간시간대로 전환하고, 매일 같이 공단에서 지정한 학원에 나가 하루 종일 영어인터뷰, 매너, 메이크업 수업을 받으며 면접의 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공단에서 정기적으로 직원분이 나오셔서 우리가 받고 있는 수업의 질과 분위기를 체크했고, 나와 함께한 30명의 친구들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늦게까지 남아 영어그룹토의를 연습했다.

 

당시 내가 최종적으로 합격했던 카타르항공 공채는 자격조건이 갑작스레 상향조정되고, 전형절차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래서 프레젠테이션 시간을 물론이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갈때의 걸음걸이나 표정관리에도 무척 신경을 썼다. 실제로 면접초반에 이름을 불린 지원자들이 대거 집으로 돌아가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져 남은 지원자들은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더욱 열심히 면접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이지 살벌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일단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다. 당시 전형은 그룹토의가 배제된 대신에, 필기시험에 기내방송문 리딩테스트가 추가되었고, 필기시험을 치루는 사이사이 지원자들을 뒤로 불러내 체중과 키를 재면서 그루밍 체크를 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면접관 앞에서 종이로 얼굴을 가리지 않기 위해 러리를 꼿꼿이 펴고 웃는 얼굴로 밝은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 기내방송문을 낭송했다. 이 때 발음도 보지만, 살짝 살짝 엿보이는 성격도 파악하는 눈치였다. 여기서 또다시 살아남은 지원자들의 번호를 27명 정도 불렀다. 그때 나는 두 손 모아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때 "72번"하고 내 번호가 호명되자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터져 나와 나는 앉은 자리에서 오래도록 고객를 푹 숙이며 감사기도를 올렸다. 얼마 만에 파이널 인터뷰 대상자로 지명을 받아보는 것인지... 생각지도 않게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꿈 앞으로 다가선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다음 날 바로 나는 일대일 면접을 가졌다. 5년 가까이 대학총장 비서일을 하며 느낀 서비스에 대한 본인의 소견과, 대학원에 진학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면접관은 무척 호기심을 가졌다. 나는 나의 커리어를 개발하고자 열심히 살아온 나의 진심을 진지하게 피력했다. 그리고 결국 진심은 통했다. 그리고 6개월 전 카타르 항공 최종면접에 고배를 마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이런 질문을 통해서 면접관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를 살폈다. 외항사 승무원으로 살아남을 만큼 강한 배짱을 가진 성격인지를 파악하려는 저의인 것이다. 이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절대 긴장하지 말고 편안한 자세와 표정으로 '"Be myself"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직 중 하나인 항공사 승무원 면접에서 의외의 사람들이 합격하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서비스직에 전혀 어울릴 그림이 나오질 않았는데, 미스코리아 뺨치는 외모의 후보자를 제치고 합격소식을 알리는 모습을 보면서 승무원 면접의 당락을 결정짓는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외연수 경험과 긍정적 성격 그리고 단정한 용모까지 갖춘 지원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승무원 시험을 준비해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승무원 되기가 서울대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현실을 절감한다. 혹자는 외항사 승무원의 당락을 결정짓는 기준으로 유창한 영어 실력과 웃는 얼굴, 피부상태, 심지어 고른 치열까지 들먹이지만 결국 최종 합격자로 살아남는 무기는 다양한 사람들과 구김없이 융화 할 수 있는 능력, 즉 대화의 기술인 것 같다. 승무원이 될 생각을 품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당당히 합격해 한국 여성을 대표하는 민간외교사절로서의 몫을 톡톡히 하며 느낄 행복과 보람은 그만큼 감당 할 그릇이 되리하는 면접관들의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다른사람들의 질문 요지, 알아듣기 쉽게 자신이 겪은 경험 중 관련 있는 일화를 곁들여 원하는 답을 제시하면서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면접의 기술이다. 면접 때 오고간 대화들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그 느낌에 충실 한다면 면접을 잘했는지를 스스로 가늠할 수 있다.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어떤 이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 몫이란 사실을 나는 해외취업을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자 메일을 읽으며, 가슴 앞으로 모은 두 손 사이로 흐르던 내 뜨거운 눈물 속에는 오래도록 변치 말자던 스스로와의 다짐과 약속이 있었다. 중동이란 새로운 환경과 생각보다 고된 비행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좌절이 있을 때마다 나는 당시의 약속을 생생히 기억해낸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얻어갈 수 있는 보람의 목록을 백지에 하나씩 적어 내려간다.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커리어, 거기서 파생되는 자분심, 넓어지는 시야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 그리고 국제적 마인드... 이것만으로도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이 보다 새로워질 씨앗은 충분하다고 판단할 때 나는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의 도시 '도하'에서 새 삶을 꾸린 지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지난 1월, 카타르 땅을 처음 밟았을 때는 꽤 추웠다. 40도에 육박하는 습한 무더위를 자랑하는 이곳이지만 그래도 때가 때인지라 한창 겨울 날씨엔 전기장판 없이 잠을 못 잤다. 금빛 모래 벌판 위로 돔 지붕을 머리에 이고 웅장하게 솟은 아라빅 건물들... 카타르의 첫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과는 달리 무엇보다도 평화롭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조용한 적요의 아래를 의미심장하게 흐르고 있을 석유의 율동이 태동처럼 지하세계를 휘청이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 잠드는 밤도 많았다. 축복받은 땅일지도 모른다는 경외심이 일 즈음엔 사막의 모래알 하나도 예사로 볼 수 없었다. 중동의 거센 에너지가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무렵을 떠올리면 아주 오래전 일처럼 아득하고, 깊고 먼강을 애써 건너온 것만 같다. 비행을 할 수 없었더라면, 내가 살고 있는 지구별에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더불어 내가 어떤 외모적 특색을 지닌 동양인으로 존재하는가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만큼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만큼 나는 여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반달이 예쁜 모습으로 하늘 윙에 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이렇게 중동의 반달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쉬던 내 젊은 날에 감사하며 매일같이 하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도 내다 볼 수 없었던 하늘을 나는 언제 다시 얻지 못할 기회라도 되는 것처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런 순간이 있어 견딜만 하고, 더불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나는 굳게 믿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나이 서른 살을 넘기고서야 승무원이란 번듯한 커리어를 얻었다. 숱한 고배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더욱 잔인하게 날아드는 편견의 시선을 보란 듯이 통과하고 전설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언제나 내 마음 깊이 뿌리내린 주문은 스스로를 믿는 힘은 결코 나를 배반하지 아니한다는 진리였다. 이제 나는 슈케이스와 트롤리에 짐을 꾸려 세계 여러 나라를 넘나드는 어엿한 승무원이다. 각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먹고, 걷고, 말하고, 웃고 숨 쉰다. 하지만 하늘의 구름과 노을이 지는 순간의 희열이 내가 자리한 위치와 지 않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울 때만큼은 줄곧 한 가지 이름만 기억하고 싶다. 정처 없이 떠도는 외로운 모양새가 나의 인생이라 해도 마음이 적을 둘 곳은 '꿈'이란 하나의 신념이란 걸 언제까지고 지키고 싶다.

 

 

안부

 

뉴욕에서 하룻밤을,

베이징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마치내 도하 집으로 돌아왔다.

 

회사에서 잡아준 쾌적한 호텔로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베개에 머리를 묻으면

한반도는 여기서 얼만치 먼가를 헤아리다

스멀스멀 잠이 들곤 했다.

 

새벽에 깨면,

검게 드리워진 커튼 틈으로 아직도 출렁이는 어둠을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우두커니 화장대 앞에 앉아

메뉴얼을 들척이다가

영어책을 끄적이다가

그리운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보다가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왔다.

 

연습장 한 가운데를 가득 메운

깨알 같은 글씨들...

 

'난 잘 지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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