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독서감상문 26] 삶이 지치고 힘이 들 때...< 류광현 '청춘, 판에 박힌 틀을 깨다'>

남내점주임 2023. 5. 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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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한겨울 눈 덮인 지리산을 러닝화에 아이젠만 묶은 남학생 2명이 내 달리고 있다. 이미 흠뻑 젖은 신발 안쪽에는 비닐 몇 장만으로 양말을 감싸 추위를 막고 있었다. 내복 한 장에 코르덴 바지만 입고는 멈추면 추울까 봐, 바람을 막아줄 산장이 나타날 때까지 쉬지도 못하고 달리고 또 달린다. 산장지기들이 "학생들 그렇게 입고 산에 다니면 얼어 죽을 수도 있어. 어서 하산하게."라며 산행을 말리는데도, "친구야! 우리 앞으로 이렇게 시련이 다가와도 멈추지 말고 내달리며 살아가자."라며 도망쳐 나와서는 또다시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그렇게 대학 입학을 앞둔 고3 마지막 겨울 방학에 무모한 도전을 한 두 남학생은 2박 3일 동안 지리산을 종주하며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열정을 가슴속에 품게 된다. 그런 그였기에 30대를 눈앞에 두고 현실에 안주하며 스물아홉 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은 고3때의 마음가짐이 아니였던 것이다.

 

"광현아, 이렇게 멈추어버린거니?"

 

그런 그에게도 불현듯 책장에 꽂혀 있던<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스무살에 친구 2명과 함께 사막 횡단에 도전하면서 얻었던 경험들이 성공적인 인생으로 향하는 발판이 되었다는 여행이야기다.

 

P. 34

 

그렇게 정해진 기준이 '개발도상국에 진출해 사업을 펼치고 있는 교민 기업가'를 찾아 뵈며 '기업가 정신 세계일주'를 하자였다. 단 한 분에게서라도 진정한 기업가 정신에 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겠다고 말이다.

 

 

P. 55

 

너무도 가난했던 김상현 대표님과의 인터뷰

 

'상처에 된장 바른다'는 이야기 들어보았나? 우리 집은 1970년까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가난했다. 당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도망쳐 나오고 싶었고, 부모님께는 2년 안에 돈을 벌어서 고국으로 보내 드리겠다고 이야기하고는 성공을 꿈꾸면서 농업이민을 받아주는 남미의 파라과이로 가는 이민선에 몸을 싫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간절함이 있으니까 다 되더라. 열악한 환경의 양계장이 이민 온 뒤 가진 첫 직장이었다. 미친듯이 일하니 다른 사람보다 급여가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민까지 와서 양계장에서 허드렛일만 하며 지낼 수는 없었다. 내 눈앞에서 나보다 확실히 돈을 더 많이 벌고 있는 유정란 감별사가 되는 것이다. 하루에 2~3시간 정도밖에 못 자면서 낮에는 미친 듯이 일하고 밤마다 언어공부와 감별연습을 병행했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면 쓰러지겠지!

 

그 정도는 되어야 진짜 힘든 것이라 생각하며 죽을 듯이 일했는데, 죽지는 않더라. 미쳐 있어서인지 아프지도 않았다. 일에 매달려 아플 시간조차 없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젊어서 하루 2~3시간 정도 잠을 자며 미친 듯이 일하는 습관은 이민생활에서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었다. 긍정적인 생각만 가지고 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살아가도 짧은 생인데, 굳이 안 된다는 마음을 갖고 노력도 안 할 필요가 있겠나?

 

P. 62

 

위기에서 기회를 본 주대석 지회장님과의 인터뷰

 

40대중반이다. 다시 무너지면 끝이라는 두려움에 무턱대고 시작할 순 없었다. 확실한 기회를 노려야 했다. 2003년 아르헨티나에도 경제위기가 불어닥치고 수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임대료와 권리금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국에서는 IMF때문에 무너졌지만, 반대로 아르헨티나의 이번 경제위기가 내게는 마지막 재기의 기회라고 여겨졌다. 역시나 기술도 없는 사람이 남들다 망할 때 오히려 시작한다고 모든사람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점원으로 일하면서 하나는 깨달았다. 옷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였기에 대부분의 회사들이 디자인에만신경쓰고 마감에는 소홀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습관이 무서운지 기존의 회사들은 이 문제를 개선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계속 똑같은 옷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생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감에 집중했다. 거래처마다 옷을 들고 가서는 뒤집어 마감처리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마감 처리까지 깔끔하게 신경을 쓴 옷이라는 이미지를 거래처에 각인시킨 것이다. 자꾸 문을 두드리다 보니 한 번, 두 번 거래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딱 1년이 지나니까 출근해보면 공장 앞에 거래처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내 물건을 사기 위해서 사람들이 줄 서 있는광경에 가슴이 울컥하는 그 기분을 알겠는가?

 

하지만 머지않아서 곧바로 위기가 찾아온다. 아르헨티나에서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간과했던 것이다. 계절이 지난 옷들이 팔리지 않아서 재고로 쌓이고, 망하나 싶을 정도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버텨왔는데 반년을 더 못 버티겠냐는 생각으로 다음 시즌낀지 버티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해 들어 빠른 계절의 변화로 새로운 계절 옷에 대한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재고로 쌓아 두었던 옷들까지 빠르게 모두 팔리게 된 것이다.

 

만일 40대 중반에 똑같은 위기를 겪는다면 과연 어떻게 헤쳐나갈까?

P. 70

 

큰 가게를 만드는 김홍렬대표

 

사람과 시스템의 대한 한계를 깨지 못해서인 것 같다. 어떤 국가의 사람을 고용하든 잘하는 사람은 잘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킨다.

남을 못 믿어서 계산대에 못 앉히고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앉아서 돈만 받고 있다면 작은 가게로 끝날 수 밖에 없다. 더 큰 꿈을 위해서 각각의 자리에 맞는 최고의 직원을 고용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서 어떻게 확장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 동안 사람에 대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좋은 인재와 함께 일하고 싶은 것은 모든 기업가의 희망일 것이다. 하지만 직원을 아무리 잘 채용해도 조그만 동양인 사장한테 이 나라 사람들이 이유 없이 충성하며 열심히 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같은 민족도 아닌 외국인 사장이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서로 100퍼센트 신뢰 관계가 형성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특별한 사간을 계기로 직원들과 나 사이에 깊은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일하던 직원이 갑자기 심장 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함께 일이니 회사 대표로서 당연히 장례식장에 찾아가야 했다. 오열하는 유족들을 보니 그들에게 무엇이든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직원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아직 미취업상태라며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일하게 된 아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함께 근무했던 직원에 대한 배려가 그들에게는 감동적인 사건이었나보다. 회사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함께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통해서 좋은 제품이 생산되었기에 회사는 점점 성장했다. 직원들로부터 무언가를 뽑아내려고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복지제도를 통해서 자꾸 주려고 하면, 오히려 직원들은 더욱 회사에 돌려준다.

 

P. 102

 

물려받은 빚을 희망의 빚으로 만든 최희진대표

 

아버지의 솜 공장을 물려받는 것으로 첫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큰 재산을 상속받은 것 같으나, 당시 경영이 악화되어서 23만 달러의 빚만 떠안게 된 상황이었다.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갑자기 볼리비아로 귀국해서 맡게 된 회사 경영이 생각대로 되겠는가?

 

젊은 혈기로 모든 거래처를 방문했지만 나아지기는커녕 한 번 불어나기 시작한 빚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방법은 단 하나, 모국인 한국에 도움을 청하는 것 뿐이었다. 한국의 기업이라면 이 위기를 타계할 수 있는 도움을 줄거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한국으로 갔다. 솜 원료 회사를 찾아본 결과 딱 두 군데가 볼리비아에 적용시킬만한 원료를 가지고 있었다.빚만 있고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나? 우선은 무작정 찾아가서 담당자와의 면담을 신청했다. 담당자를 만나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볼리비아에서 솜 원료를 찾으러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져서 가진 돈이 없습니다. 저 먼 나라에서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찾아왔는데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믿고 외상으로 원료를 공급해 주시면 반드시 갚겠습니다. 간절함과 진심은 통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 해외 영업 과장님과 면담 한지 30분 만에 외상으로 원료를 공급해 주기로 했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이 나를 믿어준 힘은 굉장히 컸다. 자신감을 가지고 거래처에 영업을 다니니까 점점 사람이 불었다. 그렇게 6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일만 하고 다니니까, 내가 없어도 회사가 운영될 정도로 시장에 정착하게 되었다. 회사가 어느정도 시장에 정착했다고 노력을 멈추면 성장도 끝나는 것이다. 볼리비아는 한국보다 약 10년 정도 시장이 뒤처져 있다.제품 수준이 너무 뛰어나도 못 받아들이고, 뒤처져도 안 받아들인다. 개발도상국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는데, 각 국가마다 발전 수준이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10년 전부터 현재까지 가장 잘 나가는 제품들을 상세하게 분석해서 진출하고자 하는 나라의 시장에서 요구하는 최적 상품에 적용시킬 수 있기 바란다. 특히 남들이 다하는 것만 하려고 하지 말고, 하지 않은 것 중에서 잘 찾아보아라. 아직 안 해보았기 때문에 못 한 것이지, 시도해보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솜도 한국에서는 사양산업이지만 볼리비아에서 이렇게 승승장구할지 누가 알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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