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독서감상문 25] 서비스가 가치가 될 때 < 김모란 '매력'>

남내점주임 2023. 5. 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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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독서감상문만 쓰라면 그것도 못할 일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요즘은 일주일에 2-3 정도 글을 올리는 편이다. 이번 서른 두번째 독서감상문은 김모란 교수의 '매력'이라는 책이다. 지금까지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두번 정도 울었던 것 같다.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내가 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 책을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P. 50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밑으로 훅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1997년 여름에 있었던 괌 비행기 추락 사건이 떠 올랐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비행기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순간순간 인생의 편린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는 보고 있던 책장을 펴서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흔히 유서는 인생을 정리하는 내용이지만 생각해보면 내 유서는 보통의 유서와 사뭇 달랐다.

 

'하느님, 저 지금 죽지 않게 해주세요. 저 지금 죽으면 안 돼요. 빚쟁이들한테 넘어간 우리집, 내가 돈벌어서 우리 엄마한테 다시 되돌려 줘야 한단 말이에요.'

 

'하느님 제가 꼭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지금 말고, 엄마한테 집만 사드리고, 그 이후에 죽을게요. 하느님, 부탁이에요? 저 지금 죽으면 안 돼요...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요!'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난 이후 우리 가족은 두 다리를 뻗고 잘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성냥갑 같은 집에서 응크리고 살고 있었다. 난 지독하게 돈을 모았다.

 

P. 80

 

김윤진씨의 매력은 그녀의 연기력과 외적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수수함과 겸손에도 전혀 가식이 없었다. 단순이 그녀가 사용하는 화장품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여배우인 그녀가 예상대로 화려하기만 했다면 나는 그녀를 그저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 여배우'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을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수수함과 진실함'이란 반전의 매력이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상상했던 것, 예상했던 것이 뒤집히는 것을 보았을때 상대방에게 오묘한 매력을 느낀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방향일 때 그렇다. 화려한 연예인이 화려한 겉치레를 하기보다는 수수함을 보일 때,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리더가 사석에서는 여느 여인과 마찬가지로 애교 섞인 모습을 보일때, 언제나 권위적이기만 했던 CEO가 지나가는 어린아이들에게 한 없이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일때,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만 같은 직장 상사가 남몰래 장애우 단체에 봉사하러 다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그에 대한 시선이 바뀌며,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P.81

 

막역한 회사 동료가 있다. 입사할 때부터 오빠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었는데, 한참을 떨어져 지내다가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팀장과 부팀장의 관계로 다시 만났다. 입사 초기에는 그나 나나 비행기에 '비'자도 모르던 햇병아리 시절이었으므로 서로 업무 스타일이 어떤지도 몰랐고, 또 시간이 훌쩍 지나 만나보니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고,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아 예전의 사이로 돌아갔다. 나는 그것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공식적으로는 그가 팀장이었고 나는 부팀장의 직책이었으므로 그가 나의 직속상사이기는 했으나, 나는 그를 상사이기보다는 입사 동기로 대했다. 솔직히 만만히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에게는 팀장일 수밖에 없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객실 서비스의 총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를 만나든 고개를 먼저 숙였다. 비행기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도 먼저 인사하고, 청소부 아주머니가 일하고 나갈 때면 "고생 많으셨어요, 음료수 한 잔 하시고 가세요."라며 팔을 잡고 물 한잔, 음로수 한잔을 권했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지나가는 모든 직원에게 밝고 우렁차게 먼저 인사를 하고 늘 웃었다.

그는 고객을 대하듯 모든 사람을 대했다. 언제 어디서나 늘 공손하고 친절한 그의 모습에 나는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내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이들의 위에서 군림하고 싶어지지 안을까 늘 조심하며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를 만난 이후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나도 모르게 저지르게 되는 사소한 말실수로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여러 가지 것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를 높이려고만 하면 주위에서는 날 짓밟으려 하고, 스스로 낮추려고 하면 주위에서 날 높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P. 90

 

어느 때인가 밤샘 비행을 하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 착륙을 위해 점프시트에 앉아 승객과 마주 보고 있었는데, 연세긴 지긋한노신사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 일이 많이 피곤했나 봐요?'

 

속으로 뜨끔했다.

 

'아... 괜찮습니다.'

 

그 노신사는 내얼굴을 찬찬히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가씨, 아가씨는 웃으면 참 예쁜얼굴일 텐데 왜 웃지를 않지요?'

 

'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가씨, 아가씨는 웃으면 인생이 바뀔거예요. 많이 웃어요.'

 

'아, 네...'

 

얼굴이 화끈거려 도저히 그분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승무원인데, 승객에게 웃으라고 지적을 당하다니... 그 시절 승무원으로서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있을 때는 아니었지만, 승객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는 것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그날 이후, 나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승객 앞에서는 절대 무표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항상 웃고 있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누군가가 앞에 설 때에는 절대 무표정하거나 굳은 얼굴을 보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다.

 

그런 노력들이 빛을 발한 것일까? 수년이 지난 나는 언제나 잘 웃는 승무원으로 평가받았고 후배들에게는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에게는 '피곤하지 않아요? 밤새우며 일하시면서 어쩜 그리 쌩쌩해요? 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지난 유행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아니므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웃으면 인생이 달라질 거다.'라고 말해 준 그 노신사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수호천사가 아니었을까. 그 말 한마디에 난 표정이 바뀌었고, 인상이 바뀌었고. 인생이 바뀌었다.

 

 

P. 93

 

그날 회사 후배들과 같이 현지 가이드와 만나는 미팅 장소로 찾아갔다. 그곳엔 한국인 50여명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젊은 배낭족이였고, 간혹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도 끼어있었다. 그런데 가이드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무리 속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 때 한 남자가 내게로 와서 말을 걸었다.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예약하신분들 맞으시죠?'

 

'예'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투어를 담당한 사람입니다. 일단 이어폰 받으세요.'

 

같이 다니는 일행이 많아 한꺼번에 모아놓고 설명하기 어려워 이어폰을 끼고 듣는 시스템이었다. 명료한 육성을 선호하는 나로선 좀 실망스러운 일이었는데, 그것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가이드의 첫인상이었다. 일단 외모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튀는 캐주얼 옷차림과 군인처럼 짧은 헤어스타일에 턱과 코 밑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그뿐 아니라 양손에 반지를 몇 개씩 끼고 있었고, 체인 목걸이까지...그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선배님! 저 가이드 좀 이상하지 않아요?'

 

후배 하나가 그때의 내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유럽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보지.'

 

난 우스갯소리로 대답했지만 로마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했던 계획은 이미 수포로 돌아갔다고 실망하고 있었다. 첫 목적지인 바티칸 박물관, 훌륭한 예술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기대가 가득했다. 가이드와는 별개로 나는 그 작품들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티켓만 끊더니 우리를 박물관 계단 옆 빈 공간에 앉혔다.

 

'아니, 박물관에 왔으면 빨리빨리 작품 한 개라도 더 봐야지, 계단에는 왜 앉히는 거야?'

 

짜증이 났다. 1분1초가 아쉬운 상황이였다. 그런데 가이드는 로마제국의역사세 대해 풀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경악했다. 중 . 고등학교 시절에도 역사 시간이라면 졸리고 따분했던 기억밖에는 없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왜 그렇게 다 비슷한지, 누구누구 1세, 누구누구2세, 그 사람이 다 그 사람 같았다. 길게 설명할 것이 없이 난 역사 시간이 참 싫었다. 그래서 난 가이드가 역사를 거론하는 순간부터 깊은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마치 로마제국의 역사에 관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늣 듯 다이내믹하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나뿐 아니라 50여명의 사람들은 금세 그에게 매료되었다. 어떠한 이해관계로도 얽혀 있지 않은 관계였기에 누군가는 불평을 했을 법도 한데, 그 차디찬바닥에 앉아 근 2시간동안 설명을 들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건 설명이 아니라 한편의 연극이였다. 나는 학창시절에도 습득하지 못했던 로마제국의 역사를 단 2시간 만에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과 역사, 시대와 예술이 접목되어 누구라도 능히 그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게 했다. 내 눈앞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림을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조각상을 만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생생했다.

가이드는 열정적이었다. 이마에 땀이 맺히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데도 이야기를 멈출 줄을 몰랐다. 만약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불을 붙일 수 있다면 바티칸 박물관을 순식간에 다 태울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도 밝혔듯 나는 그날 처음 바티칸을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날 바티칸박물관은 내게 전혀 다른 미지의 세게이자 배움의 성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시간 내내 설레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딱 그말이 맞았다. 그전에도 몇 차례 보고 또 보았던 작품인데도 작가의 의도, 작품의 기법, 작품이 나온 시대상에 대해 이해하고 다시보니 그 모든 작품들이 각별하게 여겨졌다.

 

그만큼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날라리같이 튀는 의상과 범상치 않았던 외모 또한 투어가 끝날 때 즈음에는 멋스러워 보일 정도로 그에게 빠져 있었다.

 

그의 열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P. 99

 

여성이라면 잘 알겠지만, 화장솜은 화장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부록으로 따라오는 물건이다. 서비스로 늘 받는 물건이기에 화장솜을 한 박스 더 받는다고 해도 감동받을 사람은 많지 않다.

 

하루는 시내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급히 필요한 화장품이 생각나 가장 먼저 눈에 띈 한 화장품 가게에 들어갔다. 다행히 찾는 물건이 있었고 계산을 하고 나니 점원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화장솜 필요하시면 서비스로 드릴까요?'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네!'

 

힌지만 시간이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마지못해 구경을 하고 있었으나 얼른 물건을 받고 나가야 했다. 그러나 점원은 나에게 물건을 건넬 생각을 하지않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다소 퉁명스럽게 물었다.

 

'언니, 저 화장품 안주세요?'

 

그러자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화장솜을 좀 많이 드리려고 하는데 시간이 걸리네요. 박스가 많으면 들고 다니시기 불편하실것 같아서 화장솜 네 박스를 한 박스로 몰아넣고 있는 중이에요. 예쁘게 차려 입으셨는데 까만 봉투 가지고 다니시면 안 어울리잖아요. 제가 부피를 작게 만들어서 핸드백에 넣으실 수 있도록 해 드릴께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미안함과 무안함, 감동이 버무려져 아주 복잡 미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가게의 단골도 아니었고, 화장솜을 많이 달라고 먼저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센스 넘치는 점원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준 것이다.

나도 '서비스'라고 하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사람인데, 그날 그녀의 서비스에 정말 감동받았다. 어떻게 전문적인 서비스 교육도 받지 않은, 변두리 조그만 화장품 가게 점원이 나 같은 서비스 전문가를 감동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은 고객을 감동시키는 서비스는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고객을 위하는 진심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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