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독서감상문 18] 모든 것에 통하는 1만 시간의 법칙 < 말콤 글래드 웰 '아웃라이어'>

남내점주임 2023. 5. 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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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라이어를 2012년 대형서점에서 발견했고, 안의 내용을 보았을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잠시 접어두었던 책이다. 무엇보다 책이 논문처럼 구성되어져 있던 점도 그렇거니와 논문에나 실리는 참고문헌이 그때 당시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잘 알려준다. 다시 한번 진정한 아웃라이어가 무엇일까에 대해 의문점이 끊이지 않던 나에게 다시 한번 이책은 나의 이해력을 테스트했다.

 

먼저 아웃라이어의 뜻을 보면 1.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서 있는 물건. 2.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 라고 말할 수 있다.

 

이책은 1부 기회와 2부 유산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특히 내가 중점적으로 본것은 1부 2장의 1만 시간의 법칙과 2부 7장의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이다. 과연 1만 시간의 법칙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P. 54 두명의 동료와 함께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학생들을 연구한 심리학자 K.안데르스 에릭손은 1990년대 초에<재능 논쟁의사례 A>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우선 그들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번째 그룹은 '엘리트'로 장래에 세계 수준의 솔로 주자가 될 수 있는 학생들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그냥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 학생들이고, 세번째 그룹은 프로급 연주를 해본적이 없고 공립학교 음악교사가 꿈인 학생들이었다. 연구진은 그룹과 상관없이 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집어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해왔는가?" 세 그룹에 속하는 모든 학생은 대략 다섯 살 전후에 연주를 시작한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몇 년간은 대략 일주일에 두세 시간씩 비슷하게 연습을 했지만, 여덟살이 될 무렵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자기반에서 가장 잘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연습을 더 했던 것이다. 아홉살 때는 일주일에 여섯 시간, 열 살때는 열두 시간, 열네 살 때는 열여섯 시긴으로 연습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스무살이 되면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겠다는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일주일에 서른 시간을 연습했다. 결과적으로 스무 살이 되면 엘리트 학생은 모두 8000시간, 미래의 음악교사는 4000시간을 연습한다. 에릭손의 연구에서 무릎을 치게 되는 부분은 그들이 '타고난 천재', 즉 다른 사람이 시간을 쪼개 연습하고 있을 때 노력하지 않고 정상에 올라간 연주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탁월성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연습량을 확보하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거듭확인 되고 있다. 사실 연구자들은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매직넘버'에 수긍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1만 시간이다.

 

P.64 '1만 시간'은 성공의 보편적인 규칙일까? 위대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밑바닥을 파헤치면 어떤 원인이 존재할까? 두 가지 사례를 놓고 실험을 해보자. 사례를 단순화 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록 밴드인 비틀스와 세계에서 가장 갑부인 빌게이츠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구성된 비틀스는 1964년 2월 미국에 도착해 음악계에서 흔히 말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시작했고 대중음악의 형태를 뒤바꿔놓은 히트음반들을 속속 출시했다. 우리가 살펴봐야 할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미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했는가 하는 것이다.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는 미국세 오기 7년 전인 1957년부터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우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시작과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앨범이 출시되기까지의 기간을 추산하면 10년이 된다.)

 

그리고 이들이 거쳐 온 오랜 준비기간을 보다 자세히 보면 빌게이츠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빌게이츠는 도둑고양이처럼 밤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린 남들이 자는 시간에 집을 빠져나왔어요. 집에서 워싱턴 대학까지 걸어가야 했으니까요. 대낮이였다면 버스를 탔겠죠. 제가 그 많은 시간동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워싱턴 대학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8학년에서 고등학교 졸업반까지의 5년은 빌게이츠에게 '비틀스의 함부르크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빌게이츠에게는 아홉까지의 기회가 있었는데

 

첫째, 부유한 부모 덕분에 레이크사이드로 보내졌다.

둘째, 레이크사이드의 어머니들은 비싼 컴퓨터 사용료를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다.

셋째, 사용료가 부담스러워지는 시점에 부모 중 하나가 C-Cubed의 공동창업자가 됐고, 그 회사는 주말에 코드를 확인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으며 부모들은 주말 내내 프로그래밍을 해도 나무라지 않았다.

넷째, 게이츠가 ISI를 발견했고 ISI는 장부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다섯째, 게이츠는 워싱턴 대학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여섯째, 워싱턴 대학에서 새벽 세 시세서 여섯 시까지 컴퓨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있다.

일곱째, TRW가 버드 펨브로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덟째, 펨부로크가 알고 있는 최고의 프로그래머는 두 명의 고등학생이었다.

마지막으로 아홉째,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가 학교에서 벗어나 프로그램에 매진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이 모든 행운의 공통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그 모든 기회를 통해 빌 게이츠가 추가적인 연습시간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기 위해 하버드를 중퇴한 대학교 2학년 때까지 거의 7년간 쉼 없이 프로그램을 해온 셈이다.

 

7.장 비행기 추락에 잠긴 문화적 비밀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P.251 2000년, 대한항공은 델타항공으로부터 데이비드 그린버그를 비행담당자로 영입했다. 1997년 8월5일, 괌에서 추락한 사건을 뒤로 하고 말이다. 그린버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그가 대한항공의 문제를 뿌리부터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면 내놓을 수 없던 것이었다. 우선 그는 전 항공사 승무원의 영어실력 평가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솔직히 말해주었다. "괜찮은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항공 영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지요."

그는 두 번째 단계로 보잉의 계열사인 알테온에 대한항공의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이관했다. "알테온은 영어로 훈련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한국어를 할 수 없었죠." 그린버그는 '대한항공의 공용어는 영어다. 만약 대한항공의 조종사로 남고 싶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왜 그가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었는지 1997년 8월 5일, 괌에서 추락한 사건으로 되돌아가 보자.

 

드디어 밤 10시 30분에 게이트를 떠난 대한항공 801편은 20분 후 지면과 떨어졌다. 이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전 1시 30분이 되었을 무렵, 801편은 비구름을 뚫고 내려왔고 기관사가 멀리서 반짝이는 괌 공항의 불빛을 발견했다. 기관사가 물었다.

"이게 괌이야?"

잠시 침묵한 후 그가 다시 말했다.

"이거 괌이야, 괌!"

기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괌 좋네."

부기장은 관제소에 "찰리 브라보(CB, 비구름)에서 나왔다"고 보고하며 "6번 활주로 왼쪽으로 레이더 유도"를 요청했다. 비행기는 괌 공항을 향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기장은 육안으로도 착륙이 가능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괌 공항과 김포 공항 사이를 여덟 번이나 운항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공항과 그 주변 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랜딩기어가 내려갔다. 플랩(비행기의 날개 뒤편에서 속도를 낮추거나 날개의 압력을 변화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판. 고양력판)의 각도는 10도였다. 오전 1시 41분 48초에 기장이 말했다.

"와이퍼 온."

기관사가 와이퍼를 켰다. 비가 오고 있었다. 부기장이 혼잣말을 했다.

"안 보이잖아?"

그는 활주로를 찾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1초 후에 충돌 방지 장치에서 전자음성이 들려왔다.

"500피트."

비행기는 지상 500피트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 위치에서 활주로가 안 보일 리가 있을까? 2초가 지났다. 기관사가 "어!" 라며 놀라는 투로 말했다. 오전 1시 42분 19초, 부기장이 말했다.

"착륙을 포기합시다."

조종간을 당기고 하늘로 올라가 큰 원을 그린 다음 다시 착륙을 시도하자는 얘기였다. 1초 후에 기관사가 말했다.

"안 보이잖아."

부기장이 덧붙였다.

"안 보이죠? 착륙 포기!"

오전 1시 42분 22초, 기관사가 다시 말했다.

"올라갑시다."

오전 1시 42분 23초, 기장이 대답했다.

"고 어라운드(Go Around, 고도상승)."

하지만 그 비행기를 추락으로부터 건져내기엔 이미 늦었다. 오전 1시 42분 26초, 대한항공 801편은 공항의 남서쪽 4.8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야산 니미츠 힐의 언덕을 들이받았고, 6,000만 달러에 달하는 21만 2,000킬로그램짜리 강철은 시속 160킬로미터의 속도로 암석지대에 처박혔다. 소나무를 살짝 건드린 후 석유 파이프라인에 걸린 기체는 화염에 휩싸여 골짜기로 떨어지기 전까지 600미터가량 더 미끄러졌다. 구조대원들의 추락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254명의 탑승객 중 228명이 사망했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이다.

 

다시 조종실로 돌아가보자.

"오늘, 기상레이더 덕 많이 본다."

이제는 누구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1997년으로 대한항공이 조종실 내 권력 간격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기장은 지쳤고 기관사의 속마음은 기장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기장이 대답했다.

"그래. 정말 쓸모 있지."

그는 듣고 있지 않았다. 비행기는 VOR을 목표로 날아가고 있었고 그 VOR은 산중턱에 있었다. 날씨가 개지 않아 조종사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기장은 랜딩기어를 내리고 플랩을 펼쳤다.

오전 1시 41분 48초, 기장이 말했다.

"와이퍼 온."

기관사는 와이퍼를 켰다. 비가 오고 있었다.

오전 1시 41분 59초, 부기장이 혼잣말을 했다.

"안 보이잖아?"

그는 활주로를 찾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1초 후, 지표근접경보장치에서 생기 없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500피트."

기체는 지상 500피트에 있었다. 이 경우 지표면은 니미츠 힐의 경사면이었다. 하지만 땅 위에 활주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조종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왜 활주로가 보이지 않는 걸까? 기관사가 놀라는 어투로 "어!"라고 말했다. 경보장치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그들이 처음 생각했던 위치와 달리 자신들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머리를 썼을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오전 1시 42분 19초, 부기장이 말했다.

"착륙, 포기합시다."

그는 결국 힌트를 주다가 동료에게 권유하는 방식으로 어조를 높였다. 그는 착륙을 취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훗날 조사를 통해 그 시점에 부기장이 조종권을 넘겨받고 조종간을 당겼더라면, 니미츠 힐에 충돌하지 않고 재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부기장은 기장이 명백히 잘못하고 있을 경우, 그렇게 행동하라고 훈련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실에서 배우는 내용일 뿐이고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은 엄연히 달랐다. 실수를 하면 손으로 등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 조종실의 현실이었다.

오전 1시 42분 20초, 기관사가 말했다.

"안 보이잖아."

결국 재앙이 그들 앞에 얼굴을 드러낼 때가 되어서야 부기장과 기관사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기장이 '고 어라운드'하기를, 조종간을 당겨 다시 착륙을 시도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결국 그린버그의 영어 평가와 알테온의 프로그램은 한국의 문화적 비밀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한 것이다. 그린버그는 이야기 한다.

"케네디 공항의 러시아워에 손짓, 발짓으로 대화할 수는 없지요. 어디까지나 대화로 풀어가야 하므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이애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로 말할 필요는 없겠죠. 그러나 외국인과 중요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영어는 매우 중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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