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독서감상문 13]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 '촌놈, 하늘을 날다'>

남내점주임 2023. 4. 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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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뉴스에 자주 보던 사람이네요. 왜 이명박 대통령부터 제가 쓰는 독서감상문에 나오면 뉴스에 실리는지 저도 의문입니다. 

 

 

  •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서는?

 

  • 매 순간 상상하라! 그리고 도전하라!

 

  • 살아 있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다.

 

  • 짜릿한 가격으로 추억을 파는 국민항공사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서는?

 

보통 책을 읽을 때 첫 표지와 뒷표지에 작가의 냄새를 맡고 책을 펼친다.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궁금증은 책의 뒷표지에 잘 나와 있었다. 지금 현재는 무소속 의원으로 되어 있는 이상직의 이야기이다.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선 비행기를 띄우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 -이상직 전 이스타항공 회장-

 

'촌놈, 하늘을 날다?.'

제목 한 번 촌스럽다. 자신을 촌놈이라고 표현하다니! 제목부터 뭔가 남다를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아주 예전에 잠실역에서 만난 지훈형이 권유해 주신 책이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솔씨! 이 책 읽어보세요!' 꼭 보시고 돌려줘야 합니다.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 고마웠고, 지훈형과 2년

가까이 인연끝에 이런 농담?! 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비행기를 동경해왔다. 미술 시간에 자주 볼 수 있는 '찰흙 만들기' 시간은 비행기를

꿈꾸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대한항공을 생각하면서 비행기라고 만들었지만 항상 실패작이었다.

왜냐하면 비행기의 몸통은 바닥에 세우면 지지가 되지만 날개 부분은 마르기 전까지 휘어지거나 끊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쑤시개를 이용해서 건물의 기초공사를 하듯이 날개부분을 이어서 마를때까지의

시간을 확보했다. 그래서 결국 멋진?! 비행기를 제출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때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아마 열이면 아홉명은 과학자가 아니었을까? 과학에 깊이에 전혀 알지 못한 나에게 초등학교때는 상상속으로

쉽게 과학자가 되어 있었다.

 

오랜 만에 쓰는 독서감상문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책 읽기를 쉬어 본 적이 없다. 단지 글을 올리는데

보통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토익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빠듯한 하루 일과에 글 쓸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가 그 자리를 차지 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내 핸드폰에는 독서 감상문을 쓸 내용들로 가득하다.

'솔씨! 제가 빌려드린 책을 읽고, 가장 먼저 글을 올려주실 수 있나요?' 농담끝에 지훈형님께서 한마디 더 하셨다.

문제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었고, 또한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면서 빌려 준 책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보통 사람이 비행기를 띄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금력이 뒷받침 되어지지 않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형비행기 한 대 가격만 해도 2500억원이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한 대 띄울 것인가?

아니면 그 비행기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매 순간 상상하라! 그리고 도전하라!'

 

이상직 전 이스타 항공 회장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학부모들까지 강연을 도맡아서 한다. 강연을 통해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매 순간 상상하라! 그리고 도전하라!' 라는 간단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다.

 

특히 그가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는 눈이 빛난다. 그 이유는 그에 나이 30대 중반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얻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 그가 현대증권의 펀드매니저로 있을때,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

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도 아내와 첫째 딸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둘째인 아들이 위험한 상태였고, 일주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는 이상직 회장의 두 눈에는 더욱 빛이 난다.

 

지훈형은 나를 볼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솔씨! 파이를 넓혀야 합니다.' 파이를 넓혀라? 처음에는 파이를 넓히라

길래 수학에서 나오는 그 파이!? 인가 싶어서 좋은 말인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씨! 파이를 넓혀야 합니다.' 20번도 넘게 이 이야기를 들었더닌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살아 있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다.

 

이상직 이스타 항공 전 회장은 아픔이 많은 사람이다. 그의 아픔 첫 번째는 30대 중반 현대증권 펀드매니저를 하면서 교통사고로 둘째 아들을 잃은 슬픔이였고, 두 번째는 기업의 임원들이 경영을 잘 하지 못해 망할 것이 불보는 뻔한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과를 위해서 그 기업의 주식을 고객에게 판매 할 수 밖에 없는 펀드매니저 자리를 10년만에 박차고 나와야 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바로 세워 줄 수 있는 '꿈과 도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꿈과 도전'은 무엇일까?

 

때는 2007년 겨울로 돌아간다. '충성! 병장 정솔은 이천 칠년 일월 십일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군대를 제대하자 마자 나는 군대에서 목표했던 35세 10억만들기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한 달에 받는 8만원을 아껴가면서 2년을 모았더니 200만원 가까이 모였고, 그 금액은 쏠쏠했다. 이것과 더불어 대학교를 다니면서 만들었던 300만원을 펀드로 돌려 놓으니 2년 후에는 원금대비 80%이상이 불려져 400만원 가까이 있었으니, 35세에 10억 만들기 프로젝트가 뜻대로 이루어 질 것 같았다. 10억 만들기 프로젝트가 왜 생겼을까 되돌아가 보았다.

 

시점은 다시 중학교로 되돌아 간다. 중학교 시절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싸움이 잦으셨다. 그 싸움에 이유 첫 번째는 돈이였고, 두 번째도 돈이였다. 사춘기 시절 밤이면 밤마다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와 아버지가 언제 어머니를 헤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청소년의 중요한 '심리적 이유기'는 두려움과 슬픔속에서 견뎌야 했다. 차라리 이혼을 하면 이런 고통도 멎으리라! 어머니가 이혼서류를 쓰려고 갈 때 나는 따라 나섰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꿋꿋이 이혼 도장을 서류에 찍지 않으셨다. 아버지를 많이 사랑해서일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나의 10억 만들기' 프로젝트가 그래서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노력을 통해 그 목표를 이룬다. 나의 나이 만 28살, 나의 목표는 4분의 1정도 이루어 진 것 같다. 투 잡, 쓰리 잡은 물론이거니와 지하철에서 이동을 할 때도 경제서를 손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군대를 제대하고 순천 대학교 3학년 1학기 시절에 나는 '토익'이라는 것을 처음 듣게 되었다. '토익'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학교에서 강의가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나의 계획와 지금 토익을 공부하지 못하면 남들 취업 할 때, 취직을 못 할 것 같다는 두 갈래 길에서 나는 고민을 했다. 사춘기 시절 나를 성격을 내성적으로 만들었던 부모님의 매일 같은 싸움, '그래! 난 부자가 될거야! 그래서 내 자식들에게는 공부를 마음껏 하게 해줘야지!'

노래방 웨이터로 밤일?!을 하면서, 강의 시간에는 서서 수업을 들었다. 가끔씩 서서도 졸리면,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15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잠을 깰려고 노력하였고, 쉬는 시간 10분은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대신 부족한 잠을 채워야만 했다. 난생 처음으로 전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토익'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다양한 일 경험이 나를 좋은 곳으로 취직시켜 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시 2009년 8월. 나는 국립순천대학교 조리과학과를 졸업하였고, 누가 뭐라해도 학교 선배님들 같이 호텔 세프로 단체급식의 조리사로 음식점의 요리사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순리였다. 현재 에버랜드 단체급식소 과장님이신 '정재완' 학과 회장님과 친했던 터라 어렵지 않게 삼성 에버랜드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요리사는 내가 생각하는 장래 희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요리학원에서 그 많았던 무들과 감자들을 자르면서도 칼질이 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첫 번째엿고, 군대처럼 돌아가는 호텔조리사 체계, 단체급식소 체계가 군생활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자!' 그것은 항공 승무원이였다.

 

'짜릿한 가격으로 추억을 파는 국민항공사!'

 

추억이라고 하니 책에 쓰여 있던 9.11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낭송되었던

<그때가 마지막인 걸 알았더라면>

시를 공유해 볼까 한다.

 

당신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당신을 더 꼭 껴안고,

당신의 영혼을 지켜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을 것을.

 

당신이 문을 나서는 걸 보는 것이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당신을 껴안고 입 맞추며

한 번 더 당신을 불러 세웠을 것을.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당신의 모습과 음성을 기록해 놓았을 것을.

언제든 다시 돌려 볼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것을.

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대신

당신과 함게 하루를 보냈을 것을.

 

더 많은 날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여기고서

그날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을 것을.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저가 항공사는 진에어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그리고 에어부산 등의 파격적인 가격에 손님의

추억까지 놓치지 않는 마케팅을 한다. 추억을 줄 수 있는 항공사는 손님들로 하여금 다시 생각나게 하고 또 찾을 수 있게

하는 복선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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